2007년에 개봉한 '블라인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2021년 한국에서 재개봉 됐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벨기에, 불가리아까지 총 세 나라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벌써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만큼 오래된 영화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를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슬픈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영화는 도화지처럼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저택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 캐서린과 단 둘이 살던 '루벤'은 어릴 적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루벤을 씻기고 입혀줄 사람을 고용했지만, 루벤의 난폭함에 모두 떠나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앞을 보지 못해 괴로워하는 루벤을 위해 책을 읽어줄 '마리'가 집에 방문한다. 마리는 알비노라는 선천성 유전질환을 앓았는데, 피부를 비롯한 모발이 전부 백색인 증상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던 외모 때문에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못생겼다는 학대를 받아 얼굴과 몸에 흉터들이 가득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날, 마리는 서재에서 가져온 [눈의 여왕]을 읽어준다. 평소대로 난폭하게 굴던 루벤은 마리에게 단번에 제압당하고, 전에 왔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느낀 루벤은 마리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피부와 모발이 하얀 콤플렉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커다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마리는 앞을 볼 수 없는 루벤 앞에선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눈먼 사랑의 시작
루벤은 마리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고, 마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한다. 마리는 어릴 적부터 받아온 학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 낯설기만 하고, 그래서인지 루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지 못한다.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날이면 가까이 다가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하며 머릿속은 온통 마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루벤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끝으로 느끼는 감촉이다. 다가가는 걸 피하기만 하는 마리의 뒤를 쫓아다니며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쉽게 흥분하며 난폭하게 굴던 루벤은 마리를 만나고 점점 변해갔다.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즐거워하며, 웃기도 하고 루벤은 행복해한다. 루벤의 마음을 눈치챈 어머니는 아들과 마리가 단둘이 있는 것을 질투하고, 기어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도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차를 마시며 마리를 향한 무언의 압박을 준다. 캐서린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마리는 온전히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는 밖으로 루벤을 끌고 나온다. 추운 날씨에 안으로 들어가자는 루벤의 말도 가볍게 넘기며 바깥에서 책을 읽어주는 마리. 그 후로도 루벤은 책을 읽어주는 마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리에 대한 호기심은 깊어져 간다. 결국 어머니인 캐서린에게 상상한 마리의 모습이 맞다는 얘길 듣고 기뻐한다. 그리고는 마리가 싫어하는 냄새나는 물건들을 갖다 버리는 루벤. 마리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루벤을 거부하지만, 아름답다는 루벤의 말에 마음은 요동친다. 마리의 손을 만져보며 마리를 보는 루벤, 그러다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입맞춤을 한다. 마리는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놀라 집 밖으로 뛰어나오고, 아름답다는 루벤의 말에 용기를 얻어 호수 속 자신을 비춰 보지만 곧 현실을 깨닫는다. 오지 않는 마리를 기다리며 애가 타는 루벤은 자신이 마리에게 한 행동 때문에 자책한다. 다시 돌아온 마리는 루벤이 혼자서도 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평소 자신의 몸에 손이 닿는 것도 싫어서 난폭하게 굴던 루벤은 마리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와달라는 귀여운 요청을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루벤의 주치의인 빅토르 선생이 방문하게 된다. 몸이 더 나빠진 어머니를 대신해 마리가 루벤의 집에 같이 머물게 되고, 마리가 온 첫날밤. 루벤은 마리의 방문 앞에서 떠나지 못한다. 마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어머니 캐서린은 루벤을 찾고,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며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 다음 날, 루벤은 마리의 얼굴을 손끝으로 만지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다고 말해준다. 다가오는 루벤에게 마음을 연 마리는 집 밖에는 잘 나오지 않는 루벤을 바깥으로 나오게 만들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굳게 잠겨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들만의 표현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끊임없이 보고싶고, 끊임없이 감추려했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마리는 루벤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자신이 루벤에게 거짓말로 설명한 모습을 들키게 될까 봐 괴로워한다. 빅토르 선생과 루벤의 어머니인 캐서린은 루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며, 눈을 고칠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루벤은 뛸 듯이 기뻐한다. 캐서린은 마리가 루벤에게 거짓말한 것을 구실로 압박한다. 다음날 마리는 편지를 남기고, 루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떠나 버린다. 루벤은 수술을 받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사이 캐서린의 건강은 악화되고 마리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루벤에게 전달해달라고 빅토르 선생에게 말하고 죽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 루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을 모두 잃고 슬퍼한다. 루벤은 마리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다 긴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루벤은 서점을 찾고 자신이 찾고 있던 책을 마리가 찾아 주는데, 마리의 얼굴을 보고 순간 놀란 루벤을 본 마리는 자신을 보고 놀란 루벤에게 상처받고 가버린다. 지나가는 마리에게서 향기를 맡은 루벤은 직감적으로 마리를 알아보고 재회하지만 또다시 사라진 마리. 이제야 빅토르 선생에게 마리의 편지를 건네받고, 마리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이유를 알게 된 루벤은 얼음 조각으로 다시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든다.
감상평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눈이 보이지 않거나, 다리가 불편하거나, 백색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처음엔 루벤과 마리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 캐서린의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 세 사람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약자이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답게 사랑했고, 서로가 서로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주는 역할을 해준 것 같다. 방에만 갇혀 지내는 게 익숙했던 루벤을 마리는 밖으로 데려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마리와 함께 있는 공간은 루벤에게 상상 그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준 것 같다. 그리고 상처 가득한 자신의 외모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마리를 예쁘게 바라봐준 루벤의 사랑으로 영화의 후반부에는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일하고 있는 마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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